• 기획기사 개꼬장 부리는 상사를 대하는 법
    등록일: 2019.09.17 10:07 조회수: 7209
  • 1.나의 고백

    오, 이제야 고백하건대 나는 상사를 개처럼 대한 적이 있다. 아직도 반성하고 있다. 잘못은 잘못이니 말을 더하면 변명이다. 하지만 왜 그래야만 했는지 내가 처했던 사정을 조금은 설명하고 싶다.

    그는 개꼬장을 부리는 상사였다(이 글을 혹시라도 보고 계신다면 죄송합니다. 하지만 이것도 순화된 표현입니다). 부서원 모두 그로 인해 큰 고생을 하고 있었는데, 인간관계에 예민한 나는 특히 지옥이었다. 불면증이 심해 잠 못 이루다가 새벽 세 시에 출근하기도 했다.

    나는 고심 끝에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하나 골랐다. 취미 코너 안쪽에 애완동물 서가가 있고, 그 중앙에 애완견 길들이기에 관한 책이 몇 권 있었다.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말 안 듣는 애완견 길들이기에 관한 책을 하나 샀다. 그리고 그 책이 하라는 대로 상사를 대했다.

    2. 요구를 다 들어주지 말라

    강아지의 요구를 무작정 들어주면 안 된다. 강아지가 산책 나가자, 먹을 것 좀 달라는 신호를 보낸다고 해서 바로 움직이면 안 된다. 일정한 조건을 달성하면 산책을 나가고, 정해진 절차에 따라 먹을 것을 주는 일종의 룰이 있어야 한다.

    나는 책이 조언하는 대로 상사가 시키는 대로 일을 다 하지 않았다. 상사는 5쪽짜리 보고서 작성을 시켜놓고 2~3분마다 "다 됐냐?" 물어보고 10분이 지나면 프린터 앞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. 나는 상사에게 "이 보고서는 작성에 20분이 걸립니다. 자리에 계시면, 지금이 10시 30분이니까 11시 10분 전에 가지고 가겠습니다" 하고 말했다. 처음에는 보고서 달랑 작성 하나 하는 것 갖고 뭔 말이 그렇게 많아. 하기 싫어? 라든가 뭔 말대꾸야? 등의 가시 돋친 반응이 돌아왔다.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구체적 조건을 명시하고, 소요되는 절차를 설명했다.

    3. 정확히 알려줘라

    공을 던진다고 모든 강아지가 질주해 그것을 물고 돌아올 수 있는 건 아니다. 일정한 루틴을 원한다면 강아지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차근차근 알려줘야 한다. 손님이 왔을 때, 낯선 사람이 갑자기 쓰다듬으려고 할 때 등 각각의 상황별로 마땅치 취해야 할 대응을 알려주고 반복훈련시켜야 한다. 그것을 하지 않기 때문에 크게 짖거나 갑자기 무는 것이다.

    상사라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건 아니다. 그런 것처럼 보이려고 애쓸 뿐이다. 한 분야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다른 일에는 문외한인 전문가가 상사로 올 수 있다. 이런 이들은 익숙지 않은 상황이나 자신이 잘 모르는 일을 앞에 두면 더욱 예민해진다. 이럴 때 상사니까 잘 알겠지(하겠지)하고 그냥 두면 안 된다. 어디 한번 당해봐라하고 내버려 두는 건 더 나쁘다. 자연스럽게 "이 업무는 잘 아시겠지만 다시 상기시켜드리자면 이렇게 하는 겁니다"하고 운을 떼면서 디테일을 알려주는 것이 좋다. 그러면 적어도 (2주 전에 보고 받았는데 시침 뚝 떼고) "이거 왜 나한테 보고 안 했어!!!"하고 소리치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지는 않을 것이다.

    4.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말해라

    지금은 밥 먹을 시간이 아니다, 노는 시간이 지났다, 그 행동을 하면 간식을 받을 수 없다 등 강아지에게 안 되는 것을 안 된다고 명확히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. 동물 길들이기의 시작은 대개 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것을 통제하는 것이다.

    상사에게 no라고 말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. 내일까진 보고서를 완성할 수 없다, 그 예산으로는 회식을 할 수 없다 등 업무와 관련된 마지노선을 현실 그대로 말해야 한다. 그리고 당신이 오전에 나에게 소리쳤기 때문에,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당신이 질문하더라도 내 표정과 목소리는 이렇게 어둡다는 것을 드러나게 표현해야 한다. 부하 직원들이 내 생각, 말투, 표정, 행동을 당신이 모두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명료하게 보여주지 않을 때, 상사는 더욱 막 나가기 시작한다.

    5. 에필로그

    나는 약 석 달 후 상사가 총애하는 실무자가 됐다. 한 번은 술자리에서 "딴 놈들은 내가 뭐라고 하면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데, 이 새끼는 꼬리를 안 내려. 난 그게 좋아"라고 했다. 나는 "신입도 있는데 새끼가 뭡니까, 새끼가"라고 대답했고 그는 "이거 봐. 이런다니까"라고 했다.

    그러나 나는 끝내 상사를 길들이지 못했다. 그의 기본적인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. 그는 연말에 진급에 실패해 부서의 동일 직책에 일 년 더 머물기로 했다. 상사를 일 년이나 더 견딜 자신이 없던 실무자 두 명이 그의 비인격적 대우에 대해 투서를 했고 그는 직무정지가 됐다가 전보됐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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